[글 : 변호사 엄상익]

 

사진/엄상익 변호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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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물어보면 챗 GPT가 무엇이든지 대답한다. 대한민국 저출산의 원인에 대해 인공지능은 몇 초 만에 ‘경제적 부담, 일과 생활의 균형, 교육비부담, 결혼 및 출산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강릉역 근처에 작은 서점이 있다. 서점의 주인은 바다가 좋다는 아이들의 말에 강릉으로 이주한 지 이 년이 되어 간다고 한다. 그가 어떤 인생길을 걸어왔는지 그가 쓴 글을 우연히 보게 됐다.
 
그는 시간강사였었다. 십년 전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가 아내에게 가져다준 생활비는 월 팔십만원이었다. 아이에게 분유를 사 먹이기 위해 그는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재료를 날랐다. 저녁마다 거리로 나가 대리운전도 했다. 그는 교수가 되고 싶었다. 대학은 그의 신성한 제단이고 그 외는 무엇에도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는 노동을 하면서 낮에는 강의실에서 대학생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연구실에서 논문을 썼다. 그는 자신이 유령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강의실, 연구실, 도서관, 학과사무실 어디에나 그가 있었지만 어디에도 그는 없었다. 그 공간을 부유하거나 배회할 뿐이었다. 교수가 되어야 성공이고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지도교수가 은퇴한 후 그 자리를 노리고 수십명의 대학원생이 경쟁을 벌였다. 성공할 확률이 거의 없음을 그는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 대기업 임원이 ‘행복’에 대해 강의를 하는데 시간강사들이 참석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렇게 동원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기업임원이 강의도중 그를 지목해서 물었다.
 
“당신의 행복의 점수는 지금 몇 점입니까?”
 
“0점입니다”
 
그의 솔직한 대답이었다. 그는 결혼도 아이를 낳은 것도 잘못된 일이 아니었나하는 회의가 들었다. 미래도 불안했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무엇이었나. 행복한가. 괜찮은가. 어떻게 살아왔나. 그에게 닥친 현실은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나왔다.
 


그는 사람이 경쟁과 효율의 대상으로만 여겨지고 사회적인 정답이 정형화되어 있는 게 싫었다. 그는 일과 삶을 일치시켜 가며 그런 삶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는 대리운전을 계속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개인의 경험을 사회적 경험으로 풀어내는 작업이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첫 번째 책이 나왔다.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그를 불렀다. 출연을 한 후 한 달에 수십개씩의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그에게 새로운 세상의 문이 열렸다. 서울에서 강연이 있으면 대리기사일을 하는 그는 강릉에서 서울로 가는 탁송리스트를 보고 대리운전을 하면서 갔다. 교통비가 들지 않고 오히려 돈을 벌면서 갔다. 그는 아직 건강하고 운전할 수 있는데 굳이 남이 운전하는 차를 돈 내고 타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정한 삶의 방향을 잡고 그 길로 가면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려고 오늘도 뛰고 있다고 했다.
 

사진/엄상익 변호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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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을 읽고 나는 마음속으로 그에게 박수를 쳐 주었다.
 
내가 있는 실버타운 안에는 미국의 명문대학에서 학자로 또 교수로 성공했던 부부가 살고 있다. 퇴직을 하고 오십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동해의 바닷가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저녁을 먹는 식사 자리에서 그 교수부부에게 내가 읽었던 꿈을 접은 시간강사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교수를 했던 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저는 한국에서 직장을 가지고 일을 하다가 뒤늦게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됐어요. 자연히 결혼도 늦었죠. 저는 아이를 가지면 공부와 병행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이를 포기했어요. 그리고 공부에 전념해서 학위를 따고 교수가 됐죠.”
 
실버타운에서 다른 노인들은 이따금씩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이 찾아와 재잘거리고 논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사랑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아이들을 본다. 교수 출신의 그 부부는 자식도 손자 손녀도 없다. 나는 그 부부를 보면서 의문을 가져본다. 그들이 일평생 공들여 쓴 논문들이 지금도 행복을 가져다줄까 하고. 묵묵히 듣고 있던 교수 출신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성공과 행복은 별개라고 생각해요. 시간강사를 하던 그분이 교수가 되기를 포기한 건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도 박사학위를 하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빨리 방향을 돌려 트럭 운전사가 되는 것도 많이 봤으니까요. 그게 미국의 실용주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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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인 쳇지피티는 저출산의 원인을 분석할 때 아이가 주는 사랑이나 행복을 계산했을까. 성공과 행복은 별개라는 관념을 알고 계산했을까. 쳇지피티의 대답에 다정함이나 사랑이 들어있을까? 그런 게 인공지능과 인간과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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